Chapter 1. 노포(老鋪) 맛집 > 풍미♣ 풍미: Since 1957 | 무역회사의 터 위에서 다시 피어난 차이나타운의 산증인
| 상호 | 풍미 |
| 메뉴 | 중식 |
| 연락처 | 032-772-2680 |
| 주소 | 인천 중구 선린동 32-6 |
| 알림 | 📢 방문 전 영업시간&예약 확인 |
♣ 소개
풍미는 1953년, 한국전쟁으로 가업이었던 무역회사 '동순동'이 불타 없어진 자리에 1대 한성전 사장이 생계를 위해 세운 유서 깊은 중식당입니다. 부친이 지어준 '풍미'라는 이름을 70년 넘게 고수하며, 화교들의 이주와 차이나타운의 쇠락기 등 격동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왔습니다. 창업 초기 노동자들을 위한 빵과 짜장면으로 시작해, 2대 한정화 사장 시절의 만두와 호떡을 거쳐 현재 3대 한현수 사장까지 가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주문하는 수십 년 지기 단골부터 줄 서서 기다리는 관광객까지, 풍미는 인천 차이나타운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1. 전쟁의 폐허에서 일궈낸 가업: 불타버린 무역회사 건물터에 세운 식당으로, 화교 사회의 끈질긴 생명력과 재기의 의지를 상징합니다.
2. 3대를 관통하는 이름의 무게: 상호는 조금씩 변해왔지만, 아버지가 지어준 '풍미'라는 두 글자를 70년 넘게 지켜오며 가문의 정통성을 유지합니다.
3. 화교중산학교의 추억이 담긴 맛: 2대 시절 화교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던 호떡과 만두의 내공이 오늘날 대중적인 중식 요리로 승화되었습니다.
4. 세대를 잇는 단골의 성지: 메뉴판에 없는 추억의 음식을 요청하는 수십 년 단골들이 자녀와 손주를 데리고 찾는 진정한 노포의 품격을 보여줍니다.
♣ Story
풍미를 창업한 한성전 사장의 부친 한봉명은 화교 기업 '동순동(同順東)'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 제주도로 피난을 갔다가 1953년 한성전 사장만이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동순동 건물은 이미 불타 없어졌고, 한성전 사장은 먹고살기 위해 그 자리에 건물을 짓고 중국음식점을 시작했다.
‘풍미’라는 가게 이름은 부친이 지어 주었다. 그 후로 상호명을 ‘풍미가게’, ‘풍미원’, ‘풍미교자관’ 등으로 바꾸면서도, 아버지가 지어준 ‘풍미’라는 이름만은 떼지 않았다. 1970년대 말 정부 정책에 따라 청관의 화교들이 대만으로 돌아가거나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매출이 줄어들어, 잠시 장사를 접기도 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들 한정화 사장이 다시 이곳에서 장사를 하였고, 지금은 그의 아들 한현수 사장이 3대째 가게를 잇고 있다.
창업 당시 한성전 사장은 빵 종류나 짜장면을 팔았다. 당시의 화교들은 기본적으로 빵과 짜장면 만드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두 종류의 음식으로 가게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2대 한정화 사장이 가게를 맡으면서 라면과 호떡, 만두 등을 만들어 팔았는데 주로 화교중산학교 학생들이 자주 와서 사 먹었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 차이나타운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여 지금은 주말이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호황을 맞고 있다.
고객층은 단골과 차이나타운 관광객으로 구분되는데, 단골의 경우 자녀와 손주까지 데려오면서 대를 이어 찾아오고 있다. 단골이 많다 보니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도 많다. 국적이 중국인 화교이다 보니 세금을 내지만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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