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노포(老鋪) 맛집 > 평양옥♣ 평양옥: Since 1945 | 인천의 새벽을 깨워온 80년 해장국과 갈비탕의 명가
| 상호 | 평양옥 |
| 메뉴 | 해장국 |
| 연락처 | 032-882-2972 |
| 주소 | 인천 중구 도원로8번길 68 |
| 알림 | 📢 방문 전 영업시간&예약 확인 |
♣ 소개
평양옥은 본래 국밥으로 시작했으나, 현재의 주인공은 단연 '해장국'입니다. 이는 술을 깨기 위함이 아니라,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음식이었습니다. 1970~80년대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통금 해제 직전 찾아와 국밥을 들었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갈비탕 역시 미군 부대 보급선을 통해 들어온 뼈를 고아내던 인천만의 시대적 배경이 담겨 있습니다. 고기는 창업주 시절부터 신뢰를 쌓아온 '인영정육점'에서만 납품받습니다. 해장국 18시간, 갈비탕 10시간 이상 꼬박 공을 들이는 것이 이곳의 철칙입니다. "분점을 내면 그곳은 누가 일하느냐"는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김 사장은 직접 요리와 운영을 도맡으며 '평양옥'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1. 해방과 함께 시작된 역사: 1945년부터 인천 식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며 3대째 원형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2. 새벽을 여는 노동자의 음식: 단순한 숙취 해소가 아닌, 부지런한 삶을 응원하던 진한 고기 국물의 정취가 살아있습니다.
3. 엄격한 '직영' 철학: 맛의 변질을 막기 위해 분점보다는 본점의 완성도에 집중하는 창업주의 신념을 따릅니다.
4. 시대의 증언자: 대통령부터 인천항 노동자들까지, 계층을 막론하고 사랑받아온 인천의 산증인 같은 공간입니다.
♣ Story
1대 사장은 김석하, 조선옥 부부이다. 이들 부부는 원래 만주에서 공장을 운영했는데, 조선이 해방되자 재산을 다 빼앗겼다. 그래서 만주를 떠나 인천에 정착하여 상 몇 개를 놓고 장사한 것이 평양옥의 시작이다. 그러나 1대 사장 부부는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가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전쟁 중에도 가게는 무사해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1975년 둘째 아들인 김동성 사장이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가게를 맡아 운영하였다. 김명천 사장은 김동성 사장의 아들인데, 젊을 때부터 아버지를 돕다가 결혼 후부터는 정식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배웠고 1991년 가게를 이어받았다.
평양옥의 처음 위치는 앞마당의 왼편 나무 그루터기 자리였다. 장사가 잘되자 인근 가옥을 계속 사들여 7칸까지 늘렸다. 그 넓이가 지금의 주차장 자리까지였다. 그러나 1998년 주방에 불이 나면서 가게가 손상되었다. 지금의 가게는 화재 진압 이후 리모델링한 모습이다.
평양옥은 국밥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대표 메뉴는 해장국이다. 해장국은 술로 쓰린 속을 풀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었다. 특히 장사가 잘되었던 1970~80년대에는 인천으로 시찰을 나온 박정희 대통령이 통금이 풀리기 직전인 새벽에 찾아와 해장국을 먹기도 했다. 또 다른 인기 메뉴는 갈비탕이다. 김명천 사장은 한국전쟁 이후에 고기를 넣은 탕이 생겼다고 말했다. 인천의 경우 미군 부대 보급선이 들어왔는데, 미군은 뼈를 먹지 않으니 이 뼈를 받아서 끓인 것이 갈비탕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다.
음식에 필요한 재료는 농수산물 시장에서 구해온다. 가장 중요한 고기는 김석하, 조선옥 사장이 운영하였던 시기부터 거래를 해 온 인영정육점에서 납품을 받는다. 주로 조부나 부친이 운영했을 때부터 찾아온 손님이 많다. 때때로 이런 손님들이 김명천 사장의 운영 방식에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쓴소리를 해주기도 한다. 가끔 TV를 보고 찾아오는 손님도 있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다.
김 사장은 여전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 음식을 만든다. 육수를 끓이는 데 해장국은 18시간, 갈비탕은 1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주지 않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설렁탕은 뼈를 우려 나오는 음식인지라 검은 건더기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몇몇 손님들은 맑은 설렁탕이 진짜라며 불만을 내비치는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서운하다고 한다.
김 사장은 1995년경에 분점을 내고자 했다. 이에 대한 문제를 조모이자 창업주인 조선옥 사장과 의논했다. 조 사장은 “분점을 내면 그곳에는 누가 가서 일하냐”고 되물었다. 가족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가게를 운영하면 평양옥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분점이 있었던 시기에도 평양옥 본점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배달하는 형식이었다. 김 사장은 이 일을 겪은 후, 직접 요리와 운영을 도맡아 하는 것을 평양옥의 운영철학으로 삼았다.
YouTube
▸Copywriting Polished by Google Gemini AI
© Insightfully Audited by Google Gemini, Tourhealth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