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한국의 명승 > 영주 죽령 옛길 (竹嶺 옛길)♣ 영주 죽령 옛길
나레이션1. 이름에 담긴 희생의 정체성 서기 158년, 신라 아달라왕 때 **'죽죽(竹竹)'**이라는 인물이 길을 개척하다 지쳐 순사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에 전해집니다. 고개 마루에 세워진 사당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누군가의 헌신으로 열린 길임을 기억하는 정체성의 공간입니다. '죽령'이라는 이름 속에는 천 년을 넘게 이어온 개척의 역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2. 삼국시대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 죽령은 고구려와 신라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격돌했던 최전방이었습니다. 신라가 이북의 고을을 탈취하자,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죽령 이북의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며 비장한 출정기를 남긴 곳이기도 합니다. 이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국가의 명운이 오갔던 거대한 역사의 지도입니다.
3. 소백산이 빚은 초록의 수목 터널 소백산 국립공원의 품에 안긴 죽령 옛길은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진 수목 터널이 장관을 이룹니다.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소백산의 웅장한 실루엣과 맑은 물소리는, 과거 병사들의 함성과 보부상의 땀방울이 머물던 자리를 이제는 평화로운 초록의 안식처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4. 영남과 기호(畿湖)를 잇는 소통의 혈맥 영남의 관문으로서 죽령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 고개를 넘으며 문화를 나누고 물자를 교류했습니다. 흙길 위에 켜켜이 쌓인 발자국들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살아왔는지를 증명하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YouTube
▸Copywriting Polished by Google Gemini AI
Digital Heritage Library of Korea
© Insightfully Audited by Google Gemini, Tourhealth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