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경주 역사 유적지구 > 천년왕조의 궁궐터 월성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 월성지구
나레이션1. 바둑판처럼 정교한 인류사적 계획도시 신라는 삼국 통일 이후 수도 경주를 철저한 계획도시인 '왕경(王京)'으로 재편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네모반듯한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되었으며, 폭 15m에 달하는 넓은 도로에는 인도와 차도(마차길)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집은 기와를 얹었으며, 매연과 그을음이 없는 숯으로 난방을 할 만큼 쾌적하고 수준 높은 주거 환경을 자랑했습니다. "사찰은 하늘의 별처럼 많고, 탑들은 기러기처럼 늘어섰다"는 기록은 당시 경주의 번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2. 반달을 닮은 궁성, 월성(Banwolseong) 서기 101년 파사왕 때 축조된 월성은 성의 모양이 반달을 닮았다 하여 '반월성'이라고도 불립니다. 이곳은 천년 신라의 역대 왕들이 거처했던 메인 궁성이었습니다. 동쪽과 서쪽, 북쪽은 흙과 돌을 섞어 견고하게 쌓았고, 남쪽은 천연 절벽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요새였습니다. 특히 성벽 밑으로는 인공 수로인 '해자(Moat)'를 설치하여 적의 침입을 원천 봉쇄하는 최신식 방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3. 임해전과 안압지: 동궁의 화려함 문무왕 시대에 이르러 월성은 비약적으로 확장됩니다.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과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던 별궁인 '임해전'이 세워졌으며, 그 곁에는 신라 조경 예술의 정수인 인공 연못 '안압지(동궁과 월지)'가 조성되었습니다. 최근 발굴된 대규모 건물터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웅장하고 거대했던 신라 궁궐의 실제 규모를 속속 증언하고 있습니다.
4. 겹겹이 쌓인 천년의 시간 한곳에서 수도를 옮기지 않고 천년을 살았기에, 월성의 땅밑에는 시대별 문화층이 겹겹이 시루떡처럼 쌓여 있습니다. 첨성대와 계림, 그리고 월성으로 이어지는 이 거대한 유적군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찾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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