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해인사 장경판전 > 화마와 전쟁, 파괴의 고비를 념기다♣ 화마와 전쟁, 파괴의 고비를 념기다
나레이션임진왜란 이후 숙종 21년(1695)부터 고종 8년(1871)에 이르기까지, 해인사는 무려 일곱 차례의 화재를 당했다. 그런 와중에도 장경판전만은 화마를 모두 피하고 홀로 온전히 남았다. 장경판전의 신비감을 더욱 높여주는 대목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장경판전은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 초기 목조건축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세조 3년(1457)에 어명으로 판전 40칸을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서른 칸의 대장경 경판전(장경판전)을 보수하였다. 이후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장(修多羅藏)**을, 인조 2년(1624)에 **법보전(法寶殿)**을 중수하였다.
해인사와 장경판전의 위기는 한국전쟁 때 다시 한번 찾아왔다. 해인사가 있던 가야산 일대는 당시 최대의 격전지 중 하나였다.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 잔당이 해인사를 거점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하자, 국군과 유엔군은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나섰다.
폭격 명령이 떨어졌던 절체절명의 순간, 공군 대령 김영환은 1951년 9월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을 수행하면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했다. 그는 편대를 이끌고 출격했으나 가야산에 단 한 발의 폭탄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바로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고려대장경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비 몇 명 죽이기 위해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불태울 수는 없다”**며 목숨을 건 항명을 선택했다. 그의 결단 덕분에 해인사와 고려대장경판은 오늘날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소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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