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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Chapter 13. 백제역사유적지구 > 백제무왕은 익산애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 백제무왕은 익산애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익산 미륵사지 석탑 (益山 彌勒寺址 石塔): 백제무왕은 익산애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 익산 미륵사지 석탑 (益山 彌勒寺址 石塔): 국보 제11호
나레이션 나레이션

1. 제4의 왕도, 익산: 수부(首府)가 새겨진 증거 익산은 금강과 만경강이 흐르는 풍요로운 평야 지대로, 오래전부터 백제 궁궐터의 전설이 내려오던 곳입니다. 발굴 결과, 왕궁리 유적에서 '수도'를 의미하는 '수부(首府)' 글자가 찍힌 기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부여 관북리 유적과 더불어 익산이 백제의 명실상부한 중심지였음을 증명합니다. 무왕은 이곳에 남북 492m, 동서 234m의 장방형 성벽을 쌓고, 정교한 전각과 관청, 아름다운 후원(연못과 동산)을 갖춘 완벽한 왕궁을 건설했습니다.

2. 동양 최대의 사찰, 미륵사지: 3탑 3금당의 미학 무왕이 세운 미륵사는 당시 백제의 국력과 예술적 역량이 집약된 곳입니다. 약 5만 평에 달하는 대지는 우리나라 사찰 중 최대 규모이며, 특히 백제에서만 볼 수 있는 **'3탑 3금당'**의 삼원 양식은 독창성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1. 미륵사지 석탑: 목탑의 축조 방식을 석재로 구현한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始源)입니다. 본래 9층의 위용을 자랑했을 이 탑은 현재 서탑만이 남아 백제의 찬란했던 시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3. 678년 대서사의 마침표와 새로운 기대 백제는 한성에서 기반을 닦고, 웅진에서 재기했으며, 사비에서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익산에서 제2의 도약을 꿈꿨습니다. 비록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678년의 역사가 멈췄으나, 익산에 남겨진 유적들은 백제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중흥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웅진·사비·익산의 유적은 5~7세기 동아시아 도성 문화의 정수이며, 향후 493년 역사의 한성 유적까지 포함될 백제 역사 아카이브의 완전성을 기대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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