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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Chapter 12. 남한산성 > 오랜 세월 동아시아 문화권이 교류한 명백한 증거

♣ 오랜 세월 동아시아 문화권이 교류한 명백한 증거

수어장대 (守禦將臺): 오랜 세월 동아시아 문화권이 교류한 명백한 증거
▲ 수어장대 (守禦將臺): 시도유형문화재 제1호
나레이션 나레이션

1. 신라 '주장성'의 실체를 찾다 오랜 시간 전설로만 전해지던 신라 문무왕 시대의 '주장성'은 2004년 남한산성 행궁터 발굴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한 장의 무게가 무려 20kg에 달하는 초대형 기와와 거대한 주춧돌의 발견은 이곳이 신라 시대부터 한강 유역을 방어하던 초거대 군사 기지였음을 증명합니다. 남한산성은 텅 빈 산성이 아니라, 고대부터 국운을 걸고 지켜온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2. 몽골군을 물리친 고려의 결전지 고려 시대에도 남한산성은 외침을 막아내는 최전방이었습니다. 몽골군의 주력 부대가 수개월 동안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공격했으나, 성 안의 군민들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유연한 방어 전략으로 끝내 그들을 물리쳤습니다. 이는 남한산성이 가진 지형적 견고함과 우리 민족의 항전 의지가 결합된 역사적 기록입니다.

3. 축성술의 진화: 고구려에서 조선, 그리고 중국까지 남한산성 성벽은 그 자체로 '성곽 건축의 역사 교과서'입니다.

  1. 삼국 및 신라: 옥수수 알갱이처럼 촘촘한 작은 성돌을 쌓고, 위로 갈수록 안으로 기울게 하여 안정성을 높인 고구려식 축성법이 기저를 이룹니다.
  2. 조선: 더 크고 단단한 장방형 성돌을 사용하고 사이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 넣어 견고함을 극대화했습니다.
  3. 동아시아 교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총과 화포의 등장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식 **전돌(벽돌)**을 사용한 '평여장'이 나타납니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 국가 간의 무기 체계와 건축 기술이 긴밀히 교류되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4. 화포에 맞서는 정교한 방어 시설 성벽 위에는 몸을 숨겨 총을 쏘는 여장, 화포를 쏘는 포루,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동시에 감시하는 총안 등이 배치되었습니다. 특히 수직 틈인 '타구'와 각기 다른 각도의 총안 설계는 변화하는 근대 무기 체계에 맞춘 조선의 과학적인 방어 철학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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