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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Chapter 1. 한국의 명승 > 서울 백악산 일원 (서울 白岳山 一圓)

♣ 서울 백악산 일원

서울 백악산 일원 (서울 白岳山 一圓): 명승 제67호
▲ 서울 백악산 일원 (서울 白岳山 一圓): 명승 제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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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수지리에 담긴 통치 철학의 정체성 **백악산(북악산)**은 조선의 수도 한양을 설계할 때 좌청룡(낙산), 우백호(인왕산), 남주작(남산) 중 가장 핵심인 북현무(北玄武), 즉 주산(主山)으로 정해졌습니다. 경복궁의 바로 뒷산으로서 왕조의 기운을 보호하고 도성을 지탱하는 지형적 뿌리이며, 조선왕조가 추구한 유교적 국가관과 풍수 사상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한 최고의 기록물입니다.

2. 도성 조형 원리의 살아있는 증거 백악산을 따라 굽이치는 한양도성 성곽은 자연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산세에 순응하며 축조되었습니다. 이는 방어라는 실용적 목적과 산수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으려는 미학적 목적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숙정문과 창의문 등 성문의 배치는 유교적 도덕 정체성을 도시 설계에 투영한 결과물로, 서울이 600년 고도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지표입니다.

3. 경복궁 후원과 소나무 경관의 정수 조선 시대 백악산은 경복궁의 거대한 '후원'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송목금지(松木禁止)' 정책을 통해 소나무 숲을 철저히 보호했는데, 이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통해 왕실의 영원함과 선비의 절개를 드러내려 했던 조선 경관 조성의 핵심 원리입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울창한 소나무 숲은 조선 왕실 미학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4. 금단의 땅에서 명승의 품으로 오랜 시간 군사 통제 구역으로 묶여 있었던 덕분에 백악산의 생태와 성곽은 역설적으로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었습니다. 백악마루에서 내려다보는 경복궁과 육조 거리(세종로)의 전망은, 수백 년 전 국왕이 보았을 국가의 위엄과 오늘날 시민들이 누리는 자유가 교차하는 독특한 역사적 감동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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